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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극과배우

연극 - 허물어진 성터

아빠: 무둑뚝하며, 구두에 전통적인 가지를 가지고있다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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왼쪽엔 지원의 집, 한 켠엔 작고 좁은 구둣방.
(조명, 번갈아 비춰가며 진행된다.)

밥상을 두고 둘러앉은 지원과 지수, 엄마.

지수 : (지원에게 수저를 건네며) 먹어, 언니.
지원 : 응. (엄마 안색을 흘낏 보면서) 또 허리가 안 좋은 거예요?
엄마 : 으응, 그냥... 몸살인가 봐.
넌, 넌 어땠니? 이것아, 이게 얼마만이니?
서울서 밥은 잘 챙겨먹고 지냈니?
지원 : 내 걱정은... 그런데 정말, 괜찮은 거야?
엄마 : 그래, 괜찮대두. 이제 밥 먹자.
지원 : 그래?......(말하려다 다문다)

밥을 먹는 모녀.
지원, 밥술을 뜨다 말고 방을 둘러본다.
지원의 시선이 구석에 놓인 구두에 가서 멎는다.

지수 : (기다렸다는) 아빠는... 늦을 거야.
지원: ...... 그래?
엄마 : 느이 아빠 아니니. 오시면 신경 안 쓰이게...
지원 : 아직도 그 고집이세요?

(좁은 구둣방 안, 아빠와 친구- 아저씨)

아빠 : 고집이라니! 내말 하나 그른 게 없어.
(만들고 있던 자신의 구두를 들어 살펴보며) 기계로 잔뜩 찍어 내봤자 빛 좋은 개살구야! 오래 갈 리가 없어, 내 손으로 만든 게 더 쓸만해.
아저씨 : (답답하다는 듯) 나~ 원 참! 정말 고집불통 독불 장군이야. 독불장군!
윗동네 장씨, 반장네도, 그리고 아랫집 독사 민씨도 납품 접었어. 그 독한 민씨가 말이야!
내가 몇 번을 말해, 이젠 수지가 맞지 않는다구! 허구 헌날 붙들고 있어봐, 누가 알아주나.
아빠 :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야. 자신이 없는 거라구.

지원: (피식 웃으며) 그래, 늘 그렇지 뭐. 항상 그 가게에 틀어박혀서, 그러고 있겠지.
엄마 : 그러지 마라... 네 아버진 그저,
지원 : 지긋지긋해, 맨날...

아빠 : 내말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이군. 그럴 거면 그만 나가게.
아저씨 : 허어, 허~이사람! 그렇게 이야길 해도 말귀를 못 알아듣나.
으리으리한 매장에 굽실대며 왕처럼 모시는 종업원, 거기에 번쩍번쩍 조명 받아 빛나는 구두를 누가 마다하겠나?
아빠 : ......
아저씨 : (달래듯) 누가 자네 뜻을 모르나? 한평생 만져 온 거라곤 이것뿐인데.
이제 그만 고집 피우고, 한 푼이라도 더 쳐준다고 할 때 그만 가게 정리하게.
(체념한 듯) 다들 문 닫기 시작했으니... 끝이야. 이만하면 오래 버티지 않았나.
어차피 이 가게도 곧... (침묵)
더 긴말 해봤자 잔소리일테니, 이만 감세. (퇴장)

엄마 : (목메이듯) 넘어 간단다.
지원 : 뭐?
엄마 : (울음을 터뜨리며)넘어간단다, 네 아빠의 가게가...!
지원: (갑자기 치통이 오면서 턱을 감싸고) 아.....
지수: 언니, 왜 그래?
지원: 아무것도 아냐.
     넘어간다는 게 정말이야? 먼지만 잔뜩 가라앉은 게딱지같은 그 가겔?
지수: ......사정 해봤는데, 이젠 더 이상 사정 봐줄 수 없다고......

(엄마, 눈가를 훔친다.)

엄마: 지원아, 네 아빠 불쌍해서 어쩌니. (울음 터뜨리며) 흐흑...... 그게 없어지면, 네 아빠는......
지원, 치통이 가시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.

(암전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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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빠 : 좀 앉아라.

지원, 잠시 망설이다 앉는다.
갑자기 또 치통을 느낀다.

지원 : ...으.....
아빠 : 어디가 아픈 게냐?
지원 : ......
아빠 : (지원의 얼굴을 힐끗 보면서) 이가 아프구나. 넌 항상 엄마처럼 이곳에 오면 어딘가 아프다고 하는구나. 이것도 유전인지......
내일 도로 올라가는 거니?

연장통을 꺼내어 구두를 닦는 천을 꺼낸다.

아빠 : 구두 굽이 나갔구나.
그래 서울서 살겠다고 나가더니 제대로 된 구두하나 신고 다니지 못하는 게냐?
구두 좀 벗어봐라.
지원 : 됐어요.

아빠, 묵묵히 준비한다.
지원, 할 수 없이 구두 한쪽을 벗어 내민다.
구두를 들고 고치는 아빠.

아빠 : 이게 마지막이구나! (능숙하게 구두 굽을 갈아 붙이고) 네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구두를 만들었지. 일본인들에게 발길질 당해가며 어깨 너머로 익힌 기술이었다고 한다. (구두를 닦는다.)먹고 살기 힘들었으니, 공부하는 것 보다 기술을 배우는 게 더 낫던 때였다. 그렇게 이 일을 물려받았다. 그런데 이제, 다들 그만 두라는구나......
지원 : ......
아빠 : 그쪽도 내밀어봐라.
지원 : 됐어요.
아빠 : 이리 내밀어 보래두.

지원, 머쓱한 표정으로 내밀어 보인다.
허리를 굽혀 구두를 닦는 아빠.

아빠 : 아까 도장 찍고 오는 참이다.
지원 : (놀라) 아빠......
아빠 : 배워먹은 것이라곤 이 짓뿐이라 이것 하나 지키고자 몹쓸 짓 많았지. 너희들이나 네 엄마에게도 정말 미안하구나.
지원 : ....


(암전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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